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벙커의 공기는 쇳내와 화약 연기로 가득했다.
벽면에 걸린 모니터에는 붉은색 경고등이 쉴 새 없이 깜빡이며 전 세계 헌터 네트워크의 현상금 공고를 비추고 있었다.
[긴급 현상수배: 플레이어 나진우]
[위험 등급: 미분류(이레귤러) / 현상금: 50,000,000,000 GOLD]
"500억 골드라니. 이 세계는 사람 목숨값도 참 인플레이션이 심하네."
진우는 낡은 금속 의자에 등을 기대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문밖에서는 이미 빙결 처형자들의 차가운 냉기가 문틈을 타고 서리를 피워내고 있었다. 숨통을 조여오는 절대영도의 결계. 보통의 헌터라면 마나 회로가 얼어붙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겠지만, 진우의 상태창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현재 레벨: 1]
[보유 마나: 0 / 0]
마나가 없기에, 결계의 마나 동결조차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때, 벙커의 보안 도어가 거친 굉음과 함께 젖혀졌다. 진우는 허리춤의 나이프를 쥔 채 몸을 낮췄다. 그러나 들어선 인물은 칼을 든 암살자가 아니었다. 새하얀 헌터 협회의 예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중년의 사내였다.
"칼을 거두시게, 이레귤러 진우 군."
사내는 품 안에서 붉은 밀랍으로 봉인된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헌터 협회장의 고유 문장이 선명히 박힌 극비 친서였다.
"협회장님께서 직접 전하라 하셨네. '세상이 그대를 사냥하려 든다면, 우리는 그대의 그림자를 사겠다.'라고."
진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친서의 봉인을 뜯자, 벙커의 암시장 비밀 네트워크를 우회하는 특수 접속 키와 함께 전 세계 헌터 연합의 감시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관리자 백도어 코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협회장이 나를 구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구하려는 것이 아니네. 다가올 심연의 문을 닫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자네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지."
그 순간, 귓가에서 시스템의 알림음이 경쾌하게 터져 나왔다.
[성좌, '야식의 지배자'가 팝콘을 씹으며 500억 골드짜리 수배지를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성좌, '비밀의 관측자'가 벙커의 암거래를 승인하며 1,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좋습니다. 협회장의 제안, 받아들이죠. 대신 판은 내가 짭니다."
진우의 손끝에서 희미하지만 눈부신 청록빛 오라가 피어올랐다.
레벨 1. 남들이 보기에 가장 보잘것없는 수치였으나, 그 수치야말로 이 뒤틀린 시스템의 모든 규칙을 부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였다.
진우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 사냥당하는 사냥감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사냥꾼들이 두려움에 떨 차례였다.